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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회프너는 누구인가.... 에리히 회프너 에리히 회프너 에리히 회프너(Erich Hoepner, 1886.10.14 ~ 1944.8.8)는 양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장성입니다.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상당한 전과를 올렸으나, 1944년 7월 20일 작전(히틀러 암살 실패)의 실패로 처형되었습니다 경력 1909년, 사관후보생 (제13기병연대 배속) 1913년 10월, 베를린 군사대학 입학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 1918년 종전 당시 기병 대위 계급) 1927년, 소령 진급 1930년, 제17보병연대 소속 대대장 1932년, 중령 진급 (제4기병연대장) 1935년, 대령 진급 1937년, 소장 진급 (제1경사단 사단장) 1938년, 중장 진급 1939년, 기병 대장 진급 (제16차량화군단 군단장) 1940년, 상급대장 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성립된 정부임. 상당히 선진화된 헌법과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으나 당시 민중들에겐 인기가 X 왜냐하면 당시 의회는 항복을 가결한 의회였기때문임. 독일 국민들 입장에서는 딱히 전쟁에서 지고 있다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의회가 '우리 항복함 ㅋ' 이런 것임 (이때문에 배후에 적이있다는 배후중상설이 시작됨.) 반대로 전쟁중 열심히 싸운 군인들의 입지는 올라가고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 몰락, 즉 히틀러의 집권에 큰 영향을 줌
사르후 전투때 강홍립의 처지 도원수 강홍립이 치계하기를, "대설 중에 행군하느라 각영 병사들이 가진 군장과 의복이 모두 젖은데다가 도독의 전진하라는 명령도 없었으므로 신들은 주둔하여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 도독이 강안찰과 함께 양마전으로 와서는 사람을 보내어 신들을 전진하도록 재촉했으므로 신들은 즉시 삼영의 병마(兵馬)에게 명하여 먼저 출발하였습니다. 양마전에서 15리 되는 전두산(轉頭山)에 닿았을 때에는 날이 이미 저문 뒤였으므로 여섯 장수와 함께 모두 진을 치고 밤을 지냈으며, 부원수는 유삼(劉三), 교 유격과 함께 전두산에서 십여 리쯤 지나서 떨어진 곳에 주둔하였습니다. 신 홍립이 가서 도독을 만나보고 각 방면 군사의 수를 물었더니, ‘서남 방면에 대병(大兵)이 일제히 전진하고 있고, 동쪽 방면의 군사는 내가 ..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실태 '조선은 강국이거늘 어찌 왜구에게 그리 곤욕을 치루는가?' 임진왜란 당시 명이 조선의 구원요청에 답한 말.. 그런데 현실은... 가정왜란(嘉靖倭乱) 明朝倭寇横行, 명나라 왜구의 횡행 嘉靖年间倭乱更甚。 가정년에 있었던 왜란이 가장 심했다. 其中1555年(嘉靖三十四年),倭寇53人横行明朝三省共80余日, 그중 1555년(가정 34년), 왜구 53인이 명나라 3개성에 대해 총 80여일을 횡행하여, 杀死杀伤官兵四五千人, 관병 4,5천명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힌다. (........?) 包括明朝一御史、一县丞、二指挥、二把总。 명나라의 어사 1명, 현승 1명, 지휘 2명, 파총 2명(*명나라 관직명)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명나라군의 전력약화는 훗날 명이 후금에 의해 멸망하는 계기가 됩니다......